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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우정 김치

  • 작성자세계김치연구소
  • 작성일시2023.04.17 21:28
  • 분류2022
  • 조회수2009

찬바람이 옷깃 사이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어느 겨울날, 집으로 묵직한 택배 상자가 하나 도착했다. 뜻밖의 택배에 어리둥절하던 것도 잠시, 택배 상자 위에 적힌 친구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항상 같이 붙어 다녔던 절친 중의 절친이었다.


택배 상자는 나 혼자 집안으로 옮기기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안을 열어보니 배추김치와 함께 무김치와 장아찌가 상자를 빈틈없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김장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쫓기듯 사는 나를 위해 친구가 택배 상자에 김치를 꼭꼭 채워 보낸 것이었다. 친구의 마음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당시 나는 남편의 일이 부침을 겪으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던 시기였다. 친구로부터 뜻밖의 김치 선물을 받게 되자 먹먹한 감정이 밀려왔다.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어렸을 때부터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었잖아. 내가 솜씨가 없어서 네 입에 맞을까 모르겠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이것밖에 해줄게 없네.”

속 깊은 친구의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이토록 나를 잘 알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됐다. 그러고 보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나의 사소한 취향이나 관심사를 기억해두었다가 뜻밖의 감동을 주곤 했다. 성인이 된 후 멀리 떨어져 지내 자주 만나지 못해도 내 생일날이면 늘 잊지 않고 전화를 해주었다.


나는 김치를 통속에 차곡차곡 옮겨 담았다. 시큼한 김치 냄새가 코끝으로 스미자 금새 침이 고였다. 손으로 길게 찢은 김치를 밥에 올려 꿀떡 하고 넘기니, 한동안 내 안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던 식욕이 되살아났다. 그만큼 친구가 담근 김치는 찰떡처럼 내 입에 잘 맞았다. 친구의 김치로 헛헛한 속을 채우고 나니, 온갖 악재로 너덜너덜하던 마음이 갑자기 부자가 된 듯 푸근해졌다.


그날을 기점으로 친구는 매해 내 몫까지 김장을 담가서 보내주었다. 덕분에 입맛이 없을 때도 친구가 보내준 김치 하나만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울 수 있었다. 어려운 현실에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도 친구의 김치를 먹고 나면 힘이 불끈 솟았다. 하루 중 몇 번은 친구의 김치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파릇한 배춧잎이 갖은 재료들을 감싸 안듯, 친구의 속 깊은 진심이 시린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친구의 김치는 더 깊은 맛을 냈다. 아마 우정이라는 특제양념이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 남편의 일도, 나의 일상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거침없이 퍼붓던 마음 속 비도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다. 5년 가까이 묵묵히 응원을 보내준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하루하루 가슴 졸이는 나날을 어떻게 버티며 살 수 있었을까 싶었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나는 내가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건 다 네 덕분이야!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너도 힘들 텐데, 이젠 김치 그만 보내줘도 돼.”라는 손 편지와 함께 친구가 좋아하는 핑크색 털장갑을 집으로 보냈다.


그러자 예쁜 글씨로 적은 친구의 편지가 돌아왔다.


김치를 담가서 보내줄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네가 맛있게 먹어주는 게 내 기쁨이야!”


결국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해에도 친구는 김장김치 두 박스를 야무지게 챙겨 보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심한 골절상을 입어 오랜 기간 입원해서 재활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늘 밝고 씩씩한 친구였지만, 이때만큼은 유독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특히 친구는 이제 김장철도 다가오는데, 올해는 김치를 못 보내주겠네. 정말 미안해.”라고 말했다.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우리집 김치까지 걱정해주는 친구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나를 생각해 김치를 보내준 것처럼, 이제는 내가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싶었다.


곧바로 나는 음식 솜씨가 뛰어난 시누이의 도움을 받아 김장김치를 담갔다. 친구가 좋아하는 조기까지 넣어 처음으로 조기김치에 도전했다. 친구가 하루 빨리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배추 한포기 한포기마다 담아 함께 버무렸다. 김치 담그는 일이 녹록하지는 않았지만, 수년간 김치를 보내준 친구의 수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얼마 후 내가 보낸 김치를 받은 친구가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서 친구는 조기를 감싼 김치를 들고서 활짝 웃고 있었다. 김치에 담긴 내 마음이 친구에게 잘 배달된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서로를 향한 김치택배는 그 후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도 김장김치를 담글 때면 서로를 떠올리고, 서로를 위해 김치를 보낸다. 사는 게 바빠서 자주 얼굴을 보지는 못해도 우리는 김치로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


김치를 담은 김장통에 가만 귀를 기울이면 보글보글 김치 익어가는 소리가 난다. 배추와 무, 젓갈, 고춧가루가 하나 되어 제대로 맛을 내고자 애쓰는 대표적인 한국의 소리다. 친구와 나의 우정도 김치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집 김치에서는 늘 잘 익은 우정의 맛이 느껴진다


작품소개

남편의 일이 부침을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던 시기에, 친구가 배추김치와 무김치 등을 담아 택배로 보내주었다. 우정이라는 특제양념이 들어간 김치였다. 그 후로 매해 김치를 담가 보내주는 친구가 있어 힘을 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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