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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과 김치, 두 발효 식품의 만남

  • 작성자세계김치연구소
  • 작성일시2024.05.13 15:27
  • 조회수1217
세계 곳곳에 절인 채소 음식들이 있다. 대개 소금이나 설탕, 식초 등에 채소를 단순히 절인 것들로, 절여서 발효를 거친 김치와는 확연히 다른 음식이다. 절임에 발효가 더해지면서 수많은 변주를 만들어 내는 것, 이 또한 김치만의 고유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젓갈은 오늘날 김장을 준비할 때 빠지지 않는 재료 중 하나다. 젓갈은 단일 식품으로도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지고, 그 품목에 따라 지역 특산품의 위상을 갖는 것도 있다. 이런 젓갈은 언제부터 김치에 쓰이기 시작했을까?

젓갈의 역사
수산물은 고인류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조개더미 ‘패총’은 선사시대에도 수산물이 주요 먹을거리였음을 보여주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부산, 전남 해남 등 서해안과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조개는 부패가 워낙 빨라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채집한 조개를 오래 저장할 방법을 고안해 내야 했는데, 그것이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는 ‘젓갈’의 시작이 되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신라 31대 왕인 신문왕(681~692년)의 폐물 품목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문왕은 683년 김흠운의 딸을 신부로 맞아들이면서 쌀, 술, 기름, 꿀, 장, 시(메주), 젓갈 등을 보냈는데, 이 물품들을 실은 수레가 135대였다고 한다. 혼례 당사자가 왕이고 진골 신분의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 물품들은 귀한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135대의 수레에 실을 정도로 적지 않은 양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단지 결혼 의례만을 위한 폐백 음식이라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먹는 식재료였을지도 모른다. 즉, 7세기 후반 무렵 젓갈은 신라 상류층에서 상에 올리던 고급 반찬이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 자하젓(자하는 바다새우 중 가장 작고 연하며 몸체가 투명하다. 자하와 소금을 5:2 비율로 버무려 항아리에 담고 2~3개월 숙성시키면 깔끔하고 깊은 맛의 젓갈이 된다)

젓갈과 김치의 만남
그렇다면 김치에 젓갈을 넣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젓갈 든 김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6세기 요리서로 추정되는 《주초침저방(酒醋沈菹方)》에 남아 있다. 이 문헌에는 감동젓으로 만든 김치 ‘감동저’와 ‘새우젓을 넣어 담근 동아 섞박지’에 관한 조리법이 적혀 있다. 감동젓은 작고 가느다란 보랏빛 새우로 담갔다 하여 ‘자하(紫蝦)젓’으로도 부르고, 순우리말로 ‘곤쟁이젓’이라고도 한다. 임금에게 진상할 만큼 귀한 감동젓에 오이를 절여 담근 김치가 감동저다. 이 감동저가 귀한 선물로 쓰였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서 《세종실록(世宗實錄)》 8년(1426년) 6월 16일 기록에는, 조정에서 명나라 사신에게 “말린 고등어 두 궤짝과 어린 오이와 섞어 담근 곤쟁이젓 두 항아리를 보냈다”라고 적혀 있다. 적어도 1400년을 전후하여 채소와 젓갈을 함께 절여서 먹었음이 확인된다. 이때 조선을 찾은 명나라 사신은 윤봉(尹鳳)과 백언(白彦)이었는데, 둘 다 조선 출신 환관이었다. 조선 출신 환관은 사신으로서 조선에 가면 자신의 친부모를 방문했다. 위 기록은 백언이 수원의 친부모를 찾아갈 때 요청한 품목으로, 실록의 날짜가 음력임을 감안하면 당시는 한여름이었을 것이다. 건조된 고등어와 염장한 젓갈이 여름에도 유통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치에 젓갈이 들어가면 맛이 훨씬 깊어진다. 이미 발효 과정을 한 번 거친 젓갈이 김치를 더욱 감칠맛 나게 하는 건 당연지사다. 무엇보다 젓갈이 제공하는 동물성 단백질은 김치에서 다양한 유산균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또한 젓갈은 단백질뿐 아니라 칼슘 같은 영양소도 풍부하게 더해준다. 하지만 젓갈이 들어가면서 김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릿한 냄새가고, 비릿한 맛을 누르기 위해 파, 마늘, 생강, 산초 같은 여러 향신료 채소가 들어가게 되었다. 한참 이후에 등장하는 고추도 젓갈의 비릿한 냄새를 잡아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김치의 맛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 『김치에 관한 세상의 모든 지식』(세계김치연구소 지음, 콘텐츠하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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