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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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디아스포라(Diaspora)
- 작성자세계김치연구소
- 작성일시2024.05.13 11:29
- 조회수1103
디아스포라(Diaspora)는 제 나라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원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며 사는 유대인을 지칭하던 데서 유래한 용어다. 우리 역사에서 디아스포라 사례가 빈번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이다. 물론 전통사회에서 디아스포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712년 조선의 사행원으로서 청나라 북경에 다녀왔던 김창업은 북경으로 가는 길목의 영원위(寧遠衛), 풍윤현(豐潤縣)이라는 지역에서 우리나라(조선)식으로 김치와 장을 만들어 파는 69세의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병자호란(1636년) 때 청나라에 잡혀 온 조선인 전쟁 포로의 후손으로, 청나라에 살면서도 조선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노파가 만들어 파는 동치미는 이 지역을 지나다니는 조선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잘 발효된 김칫국물의 개운하고 시원한 맛은 짜고 신 맛이 강한 중국식 채소 절임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물을 먹기 위해 만드는 채소 절임은 김치만이 지닌 특징 중 하나다. 긴 여정의 끝, 중국 요리와 채소 절임에 물릴 즈음 만났을 톡 쏘는 맛의 동치미는 가뭄 끝에 만난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근대 이후 한(韓)민족의 디아스포라는 1902년 12월 인천을 출발해 1903년 1월 하와이에 도착한 121명의 하와이 이민자가 시작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강제이주, 독립운동, 망명 등의 이유로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들이 정착한 지역도 미국, 일본, 연해주, 간도, 만주 등지로 다양했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는 수많은 사람이 유학이나 사업을 이유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어떤 이유로든 나라를 떠난 이들에게는 고국에 대한 향수가 어김없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이때 정서적 허기를 달래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고향의 음식, 소울푸드를 먹는 것이다. 노예선을 타고 브라질로 온 아프리카계 노예들에게는 페이조아다(Feijoada)라는 검은콩 수프가, 이탈리아에서 미국 땅으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파스타가 그랬다. 소울푸드는 음식 자체만이 아니라 ‘함께 먹는다’라는 행위를 통해 뱃속의 허기뿐 아니라 고국, 고향,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지친 영혼을 감싸 안아 안식하게 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커녕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가 전쟁을 치르느라 고단했던 이민자의 삶. 그들이 모여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먹는 시간은 정서적 유대감을 나누며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김치는 좀 더 특별했다. 어느 나라에나 흔히 있는 채소 발효 식품이지만 제조 방식이 판이해 현지 음식과 확연히 구분되었다. 발효 음식은 관여하는 미생물의 종류와 생장 조건에 따라 특유의 풍미가 형성되어 민족적 호불호가 분명하다. 더욱이 데치거나 말린 다음 소금, 식초 등에 담가 절인 여타 채소 절임은 유산균 생성이 미미한데, 김치는 생채소를 전용 양념에 버무려 열처리 없이 자연 발효시킴으로써 유산균의 생성을 극대화하였다. 게다가 다른 어떤 채소 절임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마늘과 젓갈’이 함께 버무려지다 보니 발효 과정에서 독특한 냄새를 뿜어내게 되었다. 김치 특유의 냄새는 현지인과 손쉽게 ‘구별 짓기’를 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김치문화를 공유한 한국인은 공동체적 유대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정착하든 그 지역의 채소 절임에 만족하지 못하고 발효미가 두드러진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저장을 위해 강하게 소금에 절였다가 먹을 때 소금기를 빼는 보통의 채소 절임 음식과 김치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면 이처럼 강력한 김치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례로, 일제강점기 때 연해주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했던 우리 민족, 즉 ‘고려인’들은 제대로 발효를 거쳐야 나는 김치의 깊은 맛을 ‘삭은 맛’이라고 표현하며 집착했다. 삭은 맛은 생채소를 소금에 살짝 절인 뒤, 무, 파, 마늘, 고추, 젓갈 등을 버무려 만든 양념소와 한데 섞어 서늘한 곳에서 일정 시간 익혀야 완성된다. 이국땅에 정착했던 초기의 고려인은 그곳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는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라도 김치를 만들었다. 이들이 담근 김치와 일반 채소 절임의 차이는 제조 방식으로 구별했다. 그 핵심은 바로 ‘채소 절이기 → 고추, 마늘 등 향신료 채소로 양념소 만들기 → 버무리기 → 저온 숙성’의 과정에 있다. 이러한 기본 틀이 바로 김치의 원형에 해당한다.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했기에 천일염 대신 암염을 썼고, 양념소는 고추와 마늘만으로 만들었으며, 젓갈은 포기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현지화된 김치를, 고려인들은 한국 땅을 떠날 당시 불렀던 과거 발음 그대로 ‘짐치’라고 했다. 일본 자이니치(ざいにち, 在日)의 ‘기무치(キムチ)’, 중국 옌볜(延边) 조선족의 ‘커이무치(克依姆奇)’, 심지어 선인장으로 만든 ‘쿠바-멕시코 한인의 김치’까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겪은 김치들이다. 이주민들의 김치에는 이주 당시의 원형과 현지화된 모습이 혼용되어 있다. 본토 모집단 문화와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당시 김치의 원형을 간직할 수 있었지만, 이주지의 환경적 제약은 현지화를 강요했다. 이러한 문화적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은 주어진 여건에서 이들이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고국의 원재료를 제대로 넣고 담근 오리지널 김치의 ‘삭은 맛’은 여전히 그들이 맛보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김치의 맛’임이 틀림없다.
신기하게도 ‘진짜 김치 맛’에 대한 열망을 디아스포라 후손들에게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교통·통신 및 소셜네트워크의 발달, 한류의 확산 등으로 과거 한민족 이주민들이 고국의 문화와 단절되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산 김치가 세계 곳곳에 유통되면서,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이주민에 의해 현지화된 김치는 ‘고려 짐치’라고 구분해 부르면서 한국산 김치에 열광한다. 중국 옌볜의 조선족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겪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현지화된 디아스포라 김치를 먹어 왔던 이주민 후손들이 제대로 맛을 낸 ‘진짜(Authentic)’ 김치 맛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일반 채소 절임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김치의 ‘삭힌 맛’을 머나먼 타지에서도 편하게 맛보려면 현지 채소를 ‘한국식 제조 방식’의 원형대로 담근 디아스포라 김치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재료로 제대로 담근 ‘진짜 원조 김치’에 대한 선망도 공존하는 것이 디아스포라 지역의 특이한 김치문화다. 이는 한 세기를 앞서 전 세계로 이동했던 우리 선조들이 남긴 김치 세계화의 훌륭한 선례이자 명확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치에 관한 세상의 모든 지식』(세계김치연구소 지음, 콘텐츠하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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